“퇴직금을 한 번에 받지 말고 중간정산으로 나눠 받으면 근속연수 공제를 여러 번 받아서 세금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직관적으로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사실과 반대다. 오히려 중간정산을 하면 퇴직소득세가 불리해질 수 있고, 국세청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별도의 특례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정확한 구조를 정리해본다.
먼저 퇴직소득세의 기본 원리부터 짚어야 한다. 퇴직소득세는 근속연수공제와 연분연승법이라는 두 가지 장치를 통해, 근속연수가 길수록 세 부담을 줄여주는 구조다. 근속연수 1년당 공제액은 구간이 올라갈수록 커지고(예: 20년 초과 구간이 5년 이하 구간보다 1년당 공제액이 크다), 환산급여를 계산할 때도 근속연수로 나누고 다시 곱하는 연분연승 방식을 쓰기 때문에, 같은 총액이라도 근속연수가 길수록 세율 구간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여기서 핵심을 짚어야 한다. 중간정산을 하면 근속연수가 “쪼개지는” 게 아니라 “끊기고 다시 시작된다.” 근속연수는 원래 입사일부터 퇴직일까지를 의미하지만, 중간정산을 받은 적이 있다면 마지막 중간정산일 다음 날부터 최종 퇴직일까지만 근속연수로 인정된다. 즉 30년 일하고 15년 차에 중간정산을 한 번 받았다면, 최종 퇴직 시점의 근속연수는 30년이 아니라 “중간정산 이후 15년”으로 계산된다.
이게 왜 불리하냐면, 중간정산 이후 짧아진 근속연수로 그 이후의 (보통 더 커진) 퇴직급여를 정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정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명예퇴직처럼 거액의 퇴직급여를 받게 되는 경우, 짧아진 근속연수 때문에 공제 효과가 줄어들고 세율 구간이 오히려 높아져서 세 부담이 커지는 경우가 흔하다.
다행히 이 문제를 보완하는 제도가 있다. 바로 **퇴직소득 세액정산 특례(합산 특례)**다. 과거에 중간정산(또는 중도인출)으로 받은 퇴직급여와, 최종 퇴직 시 받는 퇴직급여를 합산해서 퇴직소득세를 다시 계산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이때 근속연수도 함께 합산된다. 중간정산 시점의 근속연수와 최종 퇴직 시점의 근속연수를 더하고, 중복되는 기간이 있다면 그만큼을 뺀 기간으로 계산한다. 그렇게 재산출된 퇴직소득세에서, 중간정산 당시 이미 납부했던 세금을 차감해서 최종 납부액이 결정된다.
쉽게 말해, 합산 특례를 신청하면 중간정산을 받지 않은 것처럼 근속연수를 다시 이어붙여서 계산해준다는 뜻이다. 실제 사례를 보면 이 효과가 꽤 크다. 무주택자가 주택구입자금 마련을 위해 근속 20년 차에 퇴직금 3억 원을 중간정산해서 퇴직소득세 2,490만 원을 냈고, 이후 2년을 더 일하고 퇴직급여 2,000만 원을 추가로 받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합산 특례를 신청하면 이 2,000만 원에 대해 근속연수를 22년(20년+2년)으로 보고 재계산하므로, 합산 특례 없이 “근속연수 2년”으로 계산할 때보다 세금이 크게 줄어든다(이 사례에서는 약 94만 원 수준까지 낮아진다).
중간정산이 절세 수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중간정산은 본래 세금을 줄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법정 사유에 해당하는 급전이 필요한 상황을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 제3조가 정한 법정 허용 사유는 다음과 같다.
이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회사는 중간정산을 거부해야 하고, 사유 없이 임의로 처리된 중간정산은 세제 혜택을 온전히 받지 못할 수 있다. 또한 법정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회사(사용자)의 승낙이 있어야 실제로 지급받을 수 있다.
법정 사유 중 임금피크제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챙겨볼 가치가 있다. 이건 “근속연수 쪼개기”로 절세하는 게 아니라, 퇴직금 산정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이 깎이기 전에 정산해두는 효과 때문이다.
DB형(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은 보통 퇴직 직전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퇴직금이 산정된다.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면 그 시점부터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임금피크 적용 이후까지 기다렸다가 정산하면 퇴직금 자체의 산정 기준액이 낮아져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임금피크제 도입 직전에 중간정산을 받아두면, 임금이 높았던 시절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그동안의 퇴직금을 확정지을 수 있다는 게 핵심 포인트다. 다만 이 경우에도 앞서 설명한 근속연수 단절 문제는 동일하게 발생하므로, 최종 퇴직 시 합산 특례 신청을 잊지 않아야 한다.
중간정산금이나 퇴직금을 IRP로 이전해서 받으면, 그 시점에 퇴직소득세를 즉시 내지 않고 연금으로 수령할 때까지 과세를 이연할 수 있다. 그리고 연금 형태로(특히 장기간에 걸쳐) 수령하면 일시금으로 받을 때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연금 실제 수령연차에 따라 70%, 60%, 21년차 이상은 50% 수준으로 낮아지는 구조). 이건 중간정산 자체의 절세 효과와는 별개로, IRP라는 그릇을 활용했을 때 생기는 혜택이라는 점을 구분해서 이해하는 게 좋다.
퇴직금 중간정산을 “근속연수를 쪼개서 공제를 여러 번 받는 절세 전략”으로 접근하면 실제와 반대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중간정산은 법정 사유에 해당하는 급전이 필요할 때 활용하는 제도이지, 세금을 줄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중간정산으로 인해 근속연수가 끊기면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그 손해를 보정하기 위한 합산 특례 제도를 정확히 챙기는 게 핵심이다. 중간정산을 고려하고 있다면, 절세 효과를 기대하기보다 본인이 법정 사유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최종 퇴직 시 합산 특례를 어떻게 신청할지를 먼저 따져보는 게 맞는 접근이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합니다. 실제 세금은 개인의 근속연수, 퇴직급여 규모, 중간정산 이력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중간정산이나 합산 특례 신청 전 반드시 세무사 또는 회사 인사·재무 담당자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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