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관한 생각》과 《넛지》를 리뷰하면서,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카너먼과 탈러 두 사람만으로 완성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사이를 잇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댄 애리얼리. 18세 때 전신 화상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에서 출발해, “인간은 비합리적이지만 그 패턴은 예측 가능하다”는 명제로 행동경제학 열풍을 처음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카너먼의 책이 이론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그 이론을 가장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입문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 댄 애리얼리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18세 때 폭발 사고로 전신의 70%에 3도 화상을 입고 장기간 치료를 받았다. 이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사람들이 의외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자주 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텔아비브대를 졸업하고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인지심리학 박사, 듀크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듀크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출간된 이 책은 애리얼리의 첫 저서로, 출간 즉시 아마존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2008년 경제경영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맥패든과 조지 애커로프가 극찬했고, 뉴욕타임스는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책”이라 평했다. 2018년에는 10주년 기념판이 다시 출간됐는데, 애리얼리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안타깝게도 세상은 이성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짚는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도발적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이 대체로 합리적이다가 가끔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라는 거다. 애리얼리는 인간이 대체로 비합리적이고 가끔 이성적인 존재라고 본다. 다만 그 비합리성이 완전히 무작위적인 게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따라 예측 가능하다는 게 책 제목 ‘예측 가능한 비합리성(Predictably Irrational)’에 담긴 핵심 통찰이다.
이 발상이 신선했던 건, 비합리성을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미리 안다면, 그 패턴을 역으로 이용해 더 나은 선택을 설계할 수도 있다는 거다. 이 지점이 《넛지》에서 다룬 선택 설계 개념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책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이 ‘디코이 효과’다. 디코이는 오리 사냥에서 진짜 오리를 유인하기 위해 띄워두는 가짜 나무 오리를 뜻한다. 애리얼리는 이코노미스트 잡지의 정기구독 옵션을 예로 든다. 온라인판만 보는 선택지, 인쇄판만 보는 선택지, 그리고 온라인과 인쇄판을 모두 받는데 가격은 인쇄판 단독 선택지와 똑같은 선택지. 이렇게 세 가지를 제시하면, 누구도 두 번째(인쇄판만)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 사실상 그 선택지는 세 번째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미끼였던 거다.
이 실험이 흥미로웠던 건, 우리가 합리적으로 비교해서 선택한다고 믿는 순간조차, 사실은 누군가 설계해둔 비교 구도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가격표나 옵션 구성이 결코 무심코 만들어진 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소비할 때 한 번 더 의심하게 됐다.
책에서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이 ‘공짜(Free)’가 가진 압도적인 힘이었다. 애리얼리는 사람들이 단순히 가격이 낮은 것과 완전히 공짜인 것을 전혀 다르게 인식한다는 걸 실험으로 보여준다. 1센트짜리 초콜릿과 무료 초콜릿 중 선택하게 하면, 합리적인 가격 차이를 훨씬 웃도는 비율로 사람들이 공짜 쪽으로 몰린다는 거다. 공짜라는 단어 자체가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버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투자에서 흔히 보는 ‘무료 이벤트’나 ‘수수료 면제’ 마케팅이 떠올랐다. 합리적으로 따지면 작은 혜택일 뿐인데, ‘공짜’라는 표현 하나로 사람들의 판단력이 얼마나 쉽게 흐려질 수 있는지를 실험으로 직접 보여준다는 점이 실용적인 경고로 다가왔다.
책에서 가장 오래 곱씹게 된 건 임금 인상과 저축에 관한 실험이었다. 애리얼리는 직원들의 월급이 오르자 저축률이 3.5%에서 13.5%로 급등했다는 사례를 소개한다. 단순히 소득이 늘어서가 아니라, 늘어난 소득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상당 부분 해소해줬기 때문이라는 거다. 숫자로만 보면 단순한 임금 인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심리적 안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변수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통찰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 책은 2008년에 쓰였고, 10주년 기념판도 2018년에 나온 책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책에서 다루는 실험과 사례 중 일부는 그 이후 심리학계의 재현성 위기 논의 속에서 결과가 약화되거나 재검토된 경우도 있다. 모든 실험 결과를 절대적인 법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인간 행동의 패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집으로 접근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또한 애리얼리 본인이 후속작에서도 비슷한 톤으로 실험과 일화를 풀어내는 만큼, 이 책 하나만으로 행동경제학 전체를 깊이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입문서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더 깊은 이론적 토대를 원한다면 카너먼의 저작과 함께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 디코이 효과, 공짜의 함정처럼 짧고 강렬한 실험들이 행동경제학의 핵심 통찰을 가장 쉽게 체감하게 해준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선택한다고 믿는 순간조차, 사실은 예측 가능한 패턴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소비와 투자 모두에서 한 번쯤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 인간 판단의 결함을 학문적으로 깊이 파고들고, 《넛지》가 그 결함을 활용해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끄는 법을 다뤘다면, 이 책은 그 모든 논의의 토대가 된 실험들을 가장 친근한 언어로 풀어낸 입문서다. 어느 순서로 읽든, 세 권을 함께 두면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후기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해랑에셋입니다. 10년 장기 투자 프로젝트의 마흔 번째 날이자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8월 10일…
아파트를 팔 때 양도소득세 계산에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항목이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입니다. 공제율이 최대 80%까지 올라가는데, 어떤…
배우자가 출산했다. 회사에 알렸고, 출산휴가도 썼다. 그러면 끝인 줄 알았다. 아니다. 그 휴가 기간에 해당하는…
💡 오늘의 명언 "바닥에서 사려고 애쓰지 마라. 그것은 바보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신 가치보다…
26년 직장 생활 중 중소기업에서 일한 기간이 있었다. 당시 누군가 이 제도를 알려줬다면 5년간 매년…
《부의 추월차선》에서 엠제이 드마코는 묻는다. “당신은 서행차선에서 40년을 보낼 것인가?” 팀 페리스는 2007년에 같은 질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