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찰리의 연감》을 리뷰하면서 한 줄 짚고 넘어갔던 사실이 있다. 멍거가 책 제목을 18세기 인물의 책에서 따왔다는 거였다. 그 인물이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이고, 그 책이 바로 이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이다. 거의 300년 전 원전을 직접 읽어보니, 멍거가 왜 굳이 이 제목을 빌려왔는지 이해가 됐다. 사람을 설득하려면 이성이 아니라 이익에 호소하라는 식의 실용적 처세훈으로 가득한 책인데, 멍거가 평생 추구했던 ‘실용적 지혜’의 원형이 이미 이 안에 다 들어 있었다.
저자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정규 교육은 2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문필가, 정치가, 과학자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1732년 12월, 26세의 청년 프랭클린은 ‘리처드 손더스’라는 가명으로 필라델피아에서 달력 하나를 발행한다. 단순한 날짜표가 아니라, 여백 곳곳에 도덕적 교훈과 금언, 삶의 지혜를 빼곡히 채워 넣은 달력이었다. 이게 바로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이고, 1757년까지 25년간 매년 발행되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그 25년 치 달력의 서문과 금언들을 33개 주제로 추려 엮은 것이다. 근면, 검약, 절제, 정직, 인간관계, 행복 같은 주제별로 짧은 문장들이 빽빽하게 이어지는 구성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필요한 주제를 펼쳐 읽기 좋은 책이다. 책을 접하기 어려웠던 18세기 식민지 시대 사람들에게, 이 달력 한 권은 사실상 유일한 자기계발서이자 생활백과였던 셈이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 1758년판 서문이다. ‘에이브러햄’이라는 지혜로운 노인이 경매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부자가 되는 법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실상 프랭클린 본인의 경제관을 압축한 글이다. 이 서문은 그 자체로 400쇄 이상 따로 출간되며 자기계발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핵심은 간단하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번 돈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거다. “잠자는 여우는 한 마리의 닭도 잡지 못한다”는 문장이 이 메시지를 압축한다. 게으름을 피우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봐야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거다. 단순한 말처럼 보이지만, 이게 거의 300년 전에 쓰였다는 걸 떠올리면 근면과 검약이라는 가치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책의 본문을 이루는 33개 주제 중 특히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짚어보자면 이렇다. ‘정직’ 주제에서는 “거짓은 한 다리로 서지만 진실은 두 다리로 선다”는 문장이 나온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로 받쳐야 겨우 서 있을 수 있지만, 진실은 그 자체로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다는 비유가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신중함’ 주제에서는 “나를 완전하게 알리지는 말라”는 조언이 나오는데, 이건 단순한 처세술이라기보다 자기 패를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협상이나 인간관계에서 갖는 실질적 이점을 짚는 말로 읽혔다. ‘자존심과 교만’ 주제에서는 “교만한 사람이 가장 많은 모욕을 당한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 역시 도덕적 훈계라기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인과관계를 짚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프랭클린의 금언들이 단순한 윤리적 잔소리에 머물지 않고, 철저히 실용적인 관찰에서 출발한다는 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인상이었다.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13가지 덕목’은 이 책에서 가장 체계적인 부분이다. 프랭클린은 20대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절제·침묵·질서·결단·검약·근면·진실·정의·중용·청결·침착·순결·겸손이라는 13가지 덕목을 정한다. 그리고 한 번에 한 가지 덕목씩, 일정 기간을 두고 차례로 실천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 대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프랭클린이 책 말미에 남긴 솔직한 고백이었다. “나는 이런 덕목들을 실천하면서 내가 꿈꾸어 왔던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전보다 나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됐다.” 완벽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 자체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이 담담한 결론이, 멍거가 강조했던 “꾸준한 준비와 태도”라는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책에서 가장 오래 곱씹게 된 구절은 프랭클린이 본인의 인쇄소 시절을 회고하며 남긴 말이었다. “나는 술집에도 가지 않았고 노름 따위의 그 어떤 잡기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독서만이 나 자신에게 허락한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폭넓은 지식과 통찰을 쌓을 수 있었는지, 이 한 문장이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화려한 비결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단순한 선택이 평생을 결정했다는 거다.
다만 이 책을 읽을 때 감안해야 할 부분도 있다. 25년 치 달력에서 발췌한 짧은 금언들을 모아놓은 구성이다 보니, 하나의 일관된 논리나 서사를 따라가는 책은 아니다. 비슷한 메시지가 여러 주제에 걸쳐 반복되기도 하고, 18세기 식민지 시대의 화법과 비유라 지금 읽기엔 다소 예스럽게 느껴지는 표현들도 있다. 또한 이 책 자체는 구체적인 재테크 기법이나 투자 전략을 다루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돈을 대하는 태도와 인격을 다루는 책이지, 실전 매뉴얼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읽는 게 좋다.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 거의 300년 전에 쓰인 책인데도, 근면과 검약, 정직이라는 가치가 놀라울 만큼 낡지 않았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화려한 이론이나 복잡한 체계 없이,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시간의 검증을 거쳐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설득력을 더한다.
찰리 멍거가 굳이 18세기 인물의 책 제목을 빌려와 본인 책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를, 이 원전을 직접 읽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실용적 지혜를 추구하는 전통은 멍거가 처음 만든 게 아니라, 프랭클린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다는 걸 확인하는 독서였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 리뷰》를 아직 안 읽었다면, 이 책과 같이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후기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해랑에셋입니다. 10년 장기 투자 프로젝트의 마흔 번째 날이자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8월 10일…
아파트를 팔 때 양도소득세 계산에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항목이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입니다. 공제율이 최대 80%까지 올라가는데, 어떤…
배우자가 출산했다. 회사에 알렸고, 출산휴가도 썼다. 그러면 끝인 줄 알았다. 아니다. 그 휴가 기간에 해당하는…
💡 오늘의 명언 "바닥에서 사려고 애쓰지 마라. 그것은 바보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신 가치보다…
26년 직장 생활 중 중소기업에서 일한 기간이 있었다. 당시 누군가 이 제도를 알려줬다면 5년간 매년…
《부의 추월차선》에서 엠제이 드마코는 묻는다. “당신은 서행차선에서 40년을 보낼 것인가?” 팀 페리스는 2007년에 같은 질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