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리뷰 — 부의 격차는 능력이 아니라 지리에서 시작됐다

이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전부 개인이 어떻게 부를 일굴 것인가를 다뤘다. 저축 습관, 투자 원칙, 멘탈 관리까지. 그런데 이 책은 질문의 단위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개인이 아니라 대륙, 수십 년이 아니라 1만 3천 년이라는 시간 단위로 부의 격차를 묻는다.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라는 질문은 결국 개인의 재테크 책들이 다루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었다.

어떤 책이냐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진화생물학자 출신으로, 생물학·지리학·인류학·역사학 등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로 유명한 학자다. 1998년 퓰리처상을 받은 이 책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꼽히며, 국내에서도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최장기 1위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로 널리 읽힌 책이다. 원제는 《Guns, Germs, and Steel》, 1997년 출간 이후 25년이 지난 2023년에는 저자 특별 서문을 더한 뉴에디션이 나왔다.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문명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문명을 정복하고 지배하게 됐는가. 이 질문에 대해 다이아몬드는 인종이나 민족 간 타고난 우열이라는 답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그가 제시하는 답은 환경, 더 정확히는 지리적 조건의 차이다.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우연히 자리 잡은 땅에 어떤 자원이 있었느냐가 운명을 갈랐다는 거다.

가축화·작물화 가능한 자원의 불평등한 분포

책의 핵심 논리는 이렇다. 농업과 목축을 시작하려면 일단 가축화하거나 작물화할 만한 야생 동식물이 그 땅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화폐화 가능한 원재료’라 할 수 있는 야생종은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았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지금의 중동 일대)는 지중해성 기후와 다양한 고도, 풍부한 지형 변화 덕분에 작물화에 적합한 야생 식물과 가축화에 적합한 대형 포유류가 유독 많이 모여 있던 땅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투자에서 말하는 ‘초기 자원 배분’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똑같이 노력해도 출발선에 어떤 자원을 쥐고 있었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복리 효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거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다른 지역보다 수천 년 먼저 농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수천 년의 시간차가 이후 문자, 기술, 정치 조직, 군사력의 격차로 고스란히 누적됐다. 개인의 복리 투자가 시간이 갈수록 격차를 벌리듯, 문명의 출발 시점 격차도 시간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 셈이다.

대륙의 모양이 운명을 갈랐다 — 동서축과 남북축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던 통찰이 ‘대륙의 축’ 개념이다. 다이아몬드는 유라시아 대륙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반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는 지리적 차이에 주목한다. 같은 위도에 있는 지역은 기후가 비슷하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성공한 농작물이나 가축이 동서 방향으로는 비교적 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는 거다.

반면 남북으로 길게 뻗은 대륙에서는 위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기후가 크게 바뀌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성공한 농업 기술이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퍼지지 못했다. 똑같은 혁신이라도 그게 얼마나 빨리, 얼마나 넓게 확산될 수 있는지가 지리적 조건에 달려 있었다는 거다. 이건 투자에서 말하는 ‘네트워크 효과’와도 묘하게 닮은 구조였다. 좋은 기술이나 자산도 그게 퍼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으면 가치를 키우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병원균이라는 양날의 자원

책 제목의 ‘균’에 해당하는 부분도 흥미로운 경제적 함의를 갖는다. 가축을 많이 길렀던 유라시아 사회는 그만큼 가축에서 유래한 전염병에 오래 노출되면서 면역력을 키워왔다. 그런데 이 면역력이라는 자산이, 유라시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였을 때 의도치 않은 무기가 됐다. 천연두 같은 질병이 면역력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를 초토화시키면서, 정복 자체보다 더 큰 인명 피해를 일으켰다는 거다.

이 대목은 자원이라는 게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가축화라는 똑같은 출발점이, 한쪽에는 면역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쌓아줬고 다른 한쪽은 그 자산의 부재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자원의 보유 여부뿐 아니라, 그 자원이 시간이 지나며 어떤 부수적 가치를 만들어내는지까지 봐야 한다는 인사이트로 읽혔다.

가장 인상 깊었던 통찰

책 전체에서 가장 묵직하게 다가온 메시지는, 부와 권력의 격차가 능력이나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다이아몬드는 어떤 사회도 본질적으로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결국 누가 먼저, 더 유리한 자원을 손에 쥐고 출발했느냐의 문제였다는 거다. 이 메시지는 개인의 재테크에도 겸손한 시사점을 준다. 누군가의 부가 순전히 노력의 산물이고 누군가의 결핍이 순전히 게으름의 결과라는 단순한 서사는, 적어도 문명 단위로 보면 명백히 틀렸다는 거다.

비판적으로 봐야 할 지점들

다만 이 책에 대한 학계의 비판도 균형 있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다이아몬드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을 농업의 독립적 발상지로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는 서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뉴기니, 중남미 등 여러 지역에서도 독자적으로 농업이 시작됐는데, 이 지역들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을 뿐이라는 비판이다. 즉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먼저 발견된 게 아니라, 그 지역이 가장 많이 발굴됐기 때문에 더 일찍 시작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거다.

또한 이 책은 출간된 지 거의 30년이 다 돼가는 책이라, 그 사이 고고학과 유전학 연구가 상당히 진전됐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환경 결정론이라는 큰 틀 자체는 여전히 설득력 있지만, 세부적인 사례나 연대 추정에서는 이후 연구로 수정되거나 논쟁이 이어지는 지점들이 있다.

누구한테 추천하나

  • 국가 간, 지역 간 경제 격차의 근본 원인을 단기적 정책이 아니라 훨씬 긴 시간의 흐름에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한테 추천한다.
  • 투자나 사업에서 ‘초기 자원’과 ‘확산 속도’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다른 각도에서 곱씹어보고 싶은 사람한테도 흥미로운 통찰을 줄 거다.
  • 다만 빠르게 핵심만 훑고 싶은 독자한테는 분량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방대한 사례와 디테일을 인내심 있게 따라갈 준비가 필요한 책이다.

총평

별점은 5점 만점에 4.5점. 투자서는 아니지만, 부의 격차라는 주제를 가장 거시적인 스케일에서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곱씹을 가치가 있었다. 개인의 저축과 복리가 시간이 갈수록 격차를 벌리듯, 문명의 출발선 격차도 1만 3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다는 큰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군가의 부나 가난을 순전히 개인의 능력 문제로 환원하는 시선이 얼마나 좁은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거시적인 운과 환경이 만들어낸 격차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미시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겸허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후기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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