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책들 보면 대부분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공식을 알려주려고 한다. 근데 이 책은 정반대다. 하워드 막스는 처음부터 못을 박는다. 이 책은 투자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성공을 위한 절대 비법이나 단계별 훈련 같은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그럼 도대체 뭘 알려준다는 거지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오히려 이게 더 오래 남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하워드 막스는 오크트리 캐피털 공동창업자고, 가치투자 진영에서는 거의 전설 취급받는 사람이다. 워런 버핏이 극찬한 책으로도 유명한데, 실제로 버핏이 이 책을 읽고 “내 우편함에 하워드 막스의 메모가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열어본다”고 했을 정도다.
책 자체가 신간 원고로 쓰인 게 아니라, 저자가 지난 20년 동안 고객들에게 보내던 투자 메모를 모아서 재구성한 거다. 그래서 그런지 한 챕터 한 챕터가 독립적인 에세이처럼 읽힌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해도 좋고, 목차 보고 끌리는 챕터만 골라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목차 구성도 인상적이다. “심층적으로 생각하라”로 시작해서 “시장의 효율성을 이해하라”, “리스크란 무엇인가”, “주기에 주의를 기울여라”, “역투자란 무엇인가” 같은 20개 원칙으로 이어진다. 제목만 봐도 이 책이 “어떻게(How)”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What to think about)”에 집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저자는 평균 이상의 성과를 얻으려면 남들과 다른 생각, 즉 2차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1차적 사고는 “이 회사 전망 좋네, 사야겠다” 정도다. 근데 문제는 이런 생각은 시장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한다는 거다. 모두가 똑같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 호재는 이미 가격에 다 반영돼 있다. 2차적 사고는 한 단계 더 들어간다. “이 회사 전망이 좋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그럼 이게 가격에 얼마나 반영돼 있을까? 시장 컨센서스보다 내가 더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이런 식으로 한 겹 더 파고드는 사고방식이다.
말은 쉬운데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진짜 어렵다. 나만 해도 뉴스 보고 “오 이거 좋은데” 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이게 이미 가격에 반영됐을까?”까지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뭔가 투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한 번 더 의심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리스크를 정의하는 방식도 인상 깊었다. 저자는 투자자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건 가격이 출렁이는 변동성이 아니라 원금을 영구적으로 잃는 것이라고 말한다. “돈을 잃을지도 모르니 더 큰 상승 잠재력이 필요해”가 “가격이 변동할지도 모르니 더 큰 상승 잠재력이 필요해”보다 훨씬 말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리스크는 절대적으로 돈을 잃을 가능성이라는 거다.
학계나 금융권에서는 보통 표준편차 같은 변동성 지표로 리스크를 측정하는데, 저자는 이게 실제 투자자가 느끼는 공포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변동성은 숫자로 계산하기 쉬우니까 그걸 갖다 쓰는 거지,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다는 얘기다. 이 부분 읽으면서 그동안 “이 종목 변동성이 낮아서 안전해”라고 생각했던 게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변동성 낮은 자산도 영구 손실 가능성은 따로 존재한다.
이것도 곱씹을수록 무서운 얘기다. 책에서 던지는 질문이 이거다. “당신이 한 투자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냈다면, 그 투자에는 리스크가 없었다는 뜻일까?”
당연히 아니다. 운 좋게 위험한 베팅이 잘 풀린 것뿐일 수도 있다. 문제는 결과만 보고 과정을 평가하는 우리의 습관이다. 수익이 나면 “역시 내 판단이 옳았어”라고 자축하고, 그 안에 숨어있던 위험은 잊어버린다. 그러다 같은 방식으로 베팅을 반복하다가 한 번 크게 맞는 거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결과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평가해야 한다는 거고, 이건 투자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해도 무서울 정도로 들어맞는 말이다.
후반부로 가면 “주기에 주의를 기울여라”, “역투자란 무엇인가” 같은 챕터가 나온다. 시장은 절대 일직선으로 움직이지 않고 과열과 침체를 반복하는 사이클을 그린다는 게 핵심이다. 탐욕과 낙관주의가 한데 어우러지면 사람들은 높은 리스크 없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유행하는 자산에 비싼 값을 치르면서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걸 계속 들고 있으려 한다는 대목이 특히 와닿았다. 지금 시장 분위기를 보면서 읽으면 묘하게 소름 돋는 구절이다.
역투자(contrarian) 챕터에서는 모두가 좋다고 할 때가 오히려 팔 시점이고, 모두가 공포에 질려있을 때가 살 시점이라는, 말로는 쉽지만 실천은 정말 어려운 원칙을 다룬다. 책에서 직접 언급하듯, 어떤 자산이 누가 봐도 좋아 보이는 시점이면 그 장점은 이미 가격에 다 반영돼 있고 더 살 사람도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거다.
책 곳곳에 나심 탈레브 얘기가 자주 나온다. 저자 본인이 《행운에 속지 마라(Fooled by Randomness)》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는데, 결과와 과정을 분리해서 생각하라는 메시지나 예측 불가능한 사건(꼬리 리스크)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태도가 탈레브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평소 반복되는 사건은 계산에 넣기 쉽지만,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은 계량화하기 힘들다는 대목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별점은 5점 만점에 4.5점. 화려한 공식 대신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서 오히려 더 오래 곱씹게 된다. “2차적 사고를 하고 있는가”, “지금 이 결정의 리스크를 변동성이 아니라 영구 손실 가능성으로 보고 있는가”, “결과가 좋다고 과정까지 옳았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 이 세 가지 질문만 마음에 새겨도 이 책 값은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투자서라기보다 사고방식에 관한 책에 가깝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끝내기보다는 책장에 꽂아두고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은 책이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후기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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