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분의 1의 함정》 리뷰 — 같이 먹은 밥값에 숨어 있는 수학

생각에 관한 생각》을 리뷰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인지 확인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한 발 더 나아가서 묻는다. 그 비합리성 안에서도, 다른 사람과 얽혀 있는 상황이라면 도대체 어떤 선택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답은 친구들과 밥값을 나눠 내는 가장 흔한 순간에서 시작한다. 10명이 식당에 가서 비용을 n분의 1로 나누기로 했을 때, 나만 비싼 스테이크를 시키면 이득일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단순한 질문 하나로 시작해서, 책은 게임이론이라는 학문 전체를 펼쳐 보인다.

어떤 사람이고, 어떤 책이냐

저자 하임 샤피라는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이스라엘로 이주한 인물로, 게임이론을 다룬 논문으로 수학박사 학위를, 무한성에 대한 수학적·철학적 접근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수학, 심리학, 철학, 문학을 가르치고 있고, 이스라엘 최고의 강연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창의성과 전략적 사고를 주제로 강연한다. 흥미롭게도 실력을 인정받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는데, 수학자이면서 동시에 예술가적 감각을 지닌 이력이 책의 서술 방식에도 묻어난다.

2017년 국내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Gladiators, Pirates and Games of Trust》다. 게임이론이라는,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학문을 밥값 나누기, 해적들의 보물 분배, 결혼 중매 같은 일상적이고 흥미로운 소재로 풀어낸다. 책따세 추천도서로 선정될 만큼, 전문 지식이 없어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대중 교양서로 평가받는다.

밥값내기의 딜레마 — 책 제목의 출발점

책의 첫 장이자 제목의 모티브가 된 게 바로 ‘n분의 1의 함정’이다. 여러 명이 식당에 가서 각자 먹고 싶은 걸 시키고 비용을 똑같이 나누기로 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평소라면 저렴한 메뉴를 고를 사람도, 어차피 똑같이 나눠 낼 거라는 생각에 더 비싼 메뉴를 고르게 된다는 거다. 모두가 이런 계산을 하다 보면, 결국 다 같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이 사례가 흥미로웠던 건, 이게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죄수의 딜레마’와 정확히 같은 구조라는 점이었다. 개인 입장에서는 비싼 메뉴를 시키는 게 합리적 선택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면 집단 전체로는 가장 나쁜 결과가 나온다는 거다. 개인의 합리성과 집단의 합리성이 충돌하는 이 구조가, 투자에서도 흔히 보이는 패턴(다들 같은 종목에 몰리면서 거품이 만들어지는 상황)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수의 딜레마와 치킨 게임 — 협력이냐 배신이냐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게 죄수의 딜레마다. 따로 격리된 두 용의자가 서로의 선택을 모르는 채 자백할지 침묵할지를 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둘 다 침묵하면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상대가 배신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결국 둘 다 자백을 선택하게 된다는 거다. 합리적으로 행동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더 나빠지는 역설이 이 게임의 핵심이다.

‘치킨 게임’도 인상 깊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하는 상황에서,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패배자가 된다. 하지만 둘 다 끝까지 버티면 둘 다 파국을 맞는다. 책에서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이 치킨 게임의 실제 사례로 다루는데, 결국 누가 먼저 물러서느냐의 문제가 국제 정치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치킨게임식 가격 경쟁이나 출혈 마케팅도 결국 같은 구조라는 생각이 스쳤다.

최후통첩 게임 — 사람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모욕을 거부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실험이 ‘최후통첩 게임’이다. 한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주고, 상대방에게 얼마를 나눠줄지 제안하게 한다. 상대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둘 다 그 금액을 갖지만, 거절하면 둘 다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전통경제학의 논리대로라면 상대는 단 1원이라도 제안받으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실제 실험에서는, 제안 금액이 너무 적으면 사람들이 그 적은 돈조차 받지 않겠다며 거절을 선택한다.

이 결과가 인상적이었던 건, 인간이 순수하게 경제적 이득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보 취급당하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겠다는 심리가,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진 전통경제학의 가정을 정면으로 흔든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카너먼이 인간의 비합리성을 심리학적으로 증명했다면, 이 책은 그 비합리성이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게임의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는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통찰

책에서 가장 오래 곱씹게 된 메시지는 일회성 게임과 반복되는 게임의 차이였다. 저자는 사람들이 미래에 같은 상대와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을 때 행동 방식 자체를 바꾼다고 짚는다. 단 한 번뿐인 거래에서는 배신이 이득일 수 있지만, 관계가 반복될 걸 안다면 협력이 결국 더 유리한 전략이 된다는 거다. 이 한 가지 통찰만으로도, 신뢰와 평판이라는 게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게임이론적으로도 합리적인 전략이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비판적으로 봐야 할 지점들

다만 이 책을 읽을 때 감안해야 할 부분도 있다. 저자 스스로도 게임이론이 모든 인간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실제 인간은 게임이론이 가정하는 만큼 항상 합리적이지도, 항상 이기적이지도 않다는 점을 책 곳곳에서 인정하고 있다. 게임이론을 만능 열쇠처럼 받아들이기보다, 인간 행동을 들여다보는 여러 렌즈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게 맞을 것 같다.

또한 다양한 게임과 사례를 폭넓게 다루다 보니, 각 개념이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는 흥미로운 사례 위주로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느낌도 있다. 게임이론을 학문적으로 깊이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 이후에 좀 더 전문적인 자료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누구한테 추천하나

  • 협상, 경쟁, 신뢰 같은 일상적 상황을 좀 더 전략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한테 추천한다.
  •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인간의 비합리성에 흥미를 느꼈다면, 그 비합리성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다음 책이 될 거다.
  • 다만 게임이론을 수학적으로 깊이 파고들고 싶은 사람한테는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대중 교양서로서의 접근이다.

총평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 밥값 나누기라는 너무나 익숙한 상황에서 출발해서, 죄수의 딜레마와 치킨 게임, 최후통첩 게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이 매끄러웠다. 복잡한 수식 없이도 게임이론의 핵심 직관들을 충분히 전달한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 개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판단의 오류를 다뤘다면, 이 책은 그 오류가 다른 사람과 얽히는 순간 어떤 흥미로운 양상으로 펼쳐지는지를 보여준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우리가 왜 이렇게 자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그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는지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후기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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