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 리뷰 — 비트코인 신드롬의 시작점이 된 원전

더 피아트 스탠다드》를 리뷰하면서 사이페딘 아모스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책은 후속작이었고, 정작 그를 세계적인 비트코인 경제학자로 만든 원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 책, 국내에는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간된 《비트코인 스탠다드(The Bitcoin Standard)》다. 전작에서 법정화폐 시스템을 비판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면, 이 책은 그 비판의 대척점에 있는 비트코인이라는 대안 자체를 정면으로 다룬다. 시간 순서로 보면 이 책이 먼저고, 《더 피아트 스탠다드》가 그 논리를 화폐 비판 쪽으로 확장한 후속편인 셈이다.

어떤 사람이고, 어떤 책이냐

저자 사이페딘 아모스는 레바논아메리칸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컬럼비아대학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조국 레바논과 베네수엘라가 초인플레이션으로 무너지는 걸 직접 목격하며 화폐 시스템의 본질에 천착하게 된 배경은 전작에서 다룬 그대로다. 다만 이 책은 2018년에 먼저 출간됐고, 출간 당시부터 전 세계 비트코인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자리 잡았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직접 서문을 썼다는 점도 이 책의 권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번역서 제목인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는 원제와 결이 좀 다른데, 비트코인이 왜 투기나 해킹, 돈세탁 같은 부정적 이미지에 갇혀 있는지를 풀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책의 구성 자체는 원제 그대로 ‘비트코인 스탠다드(비트코인 본위제)’라는 발상에 충실하다. 화폐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은 다음, 그 연장선에서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화폐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

이 책의 절반 가까이는 비트코인 얘기가 아니라 인류 화폐사 얘기다. 원시 화폐부터 시작해서 금속화폐, 정부화폐를 거쳐 브레턴우즈 체제까지 시대순으로 짚어나간다. 처음엔 다소 우회적으로 느껴졌는데, 다 읽고 나니 이게 의도된 구성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저자는 좋은 화폐의 조건을 역사 속에서 검증된 사례로 먼저 보여준 다음, 그 기준에 비트코인을 대입해보는 방식을 택한 거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왜 금인가’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금이 수천 년간 화폐로 쓰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희귀해서가 아니라, 채굴 난이도 때문에 공급량이 갑자기 늘어날 수 없다는 속성 때문이었다는 거다. 새로 발견된 금광이 있어도, 전체 유통량 대비 새로 캐낼 수 있는 양은 미미하다. 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 공급’이라는 속성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화폐와 시간선호 — 이 책의 진짜 핵심

책에서 가장 묵직하게 다가온 개념이 ‘시간선호(time preference)’다. 저자는 한 사람의 운명이 결국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이 벌이는 거래로 결정된다고 본다. 시간선호가 낮은 사람은 환경이 나빠도 미래의 자신을 우선해서 목표를 이뤄내는 반면, 시간선호가 높은 사람은 아무리 운이 좋아도 결국 미래의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런데 저자는 이 시간선호가 단순히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화폐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결과라고 주장한다. 화폐 가치가 안정적이고 저축이 의미 있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시간선호가 자연히 낮아지고, 반대로 화폐 가치가 계속 깎이는 사회에서는 당장 쓰고 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되면서 시간선호가 높아진다는 거다. 이 논리가 바로 《더 피아트 스탠다드》에서 더 깊게 다뤄졌던 부분인데, 이 책에서 먼저 그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나니 두 책의 연결고리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건전화폐와 개인의 자유

저자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축이 건전화폐와 개인 자유의 관계다. 정부가 통화 공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화폐 체제에서는, 정부가 화폐를 찍어내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횡령’에 가깝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서 기존에 화폐를 보유한 사람들의 부를 암묵적으로 가져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반면 공급량이 정해진 화폐, 혹은 누구도 함부로 늘릴 수 없는 화폐는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경제적 독립을 지켜주는 수단이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책은 “제한받는 정부 대 전능한 정부”라는 구도로 화폐를 정치철학의 문제로까지 끌고 가는데, 단순한 경제서를 넘어 자유주의 사상서에 가까운 색채를 띠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비트코인이 좋은 화폐인 이유

책 후반부에서야 비로소 비트코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비트코인이 가치저장, 개인 자주성, 국제·온라인 결제, 국제 가치척도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강점을 갖는다고 짚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영원히 고정돼 있고, 그 발행 속도조차 코드로 미리 정해져 있어서 누구도 임의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흥미로웠던 건 비트코인 채굴이 낭비인지에 대한 저자의 반박이었다. 채굴에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비판에, 저자는 금 채굴이나 은행 시스템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하면 그 자체가 불건전한 화폐를 막아주는 일종의 보안 비용이라고 응수한다. 동의 여부를 떠나, 비판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구성이 책 전체에서 꽤 일관되게 이어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책에서 가장 오래 남았던 구절은 비트코인의 존재 의미를 정리한 대목이었다. 비트코인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비트코인이 갖는 진짜 의미는 화폐가 더 이상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최초의 신호탄이라는 거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부의 승인 없이도 순수하게 시장의 선택만으로 가치를 획득한 화폐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사건이라는 시각이 인상 깊었다.

비판적으로 봐야 할 지점들

다만 이 책도 《더 피아트 스탠다드》와 마찬가지로, 저자의 입장이 워낙 뚜렷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화폐사 전체를 비트코인이라는 결론을 향해 일관되게 재구성하는 느낌이 있어서, 반대 입장이나 비트코인의 한계(가격 변동성, 실생활 결제 수단으로서의 한계 등)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뤄진다.

또한 이 책은 2018년에 쓰였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 이후 비트코인을 둘러싼 규제 환경, ETF 승인, 기관 투자자들의 진입 같은 변화들은 당연히 책에 반영돼 있지 않다. 화폐사와 경제 원리를 다루는 전반부는 시대를 덜 타지만, 비트코인의 현재 상태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면 별도로 최신 자료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한테 추천하나

  • 비트코인을 단순히 가격 차트로만 접해본 사람한테 추천한다. 왜 이 자산이 만들어졌고, 어떤 화폐사적 맥락에서 등장했는지를 처음부터 이해하고 싶은 사람한테 적합하다.
  • 더 피아트 스탠다드》를 먼저 읽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논리의 출발점을 거꾸로 짚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거다.
  • 다만 빠르게 비트코인 투자 정보만 얻고 싶은 사람한테는 다소 우회적이고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은 화폐사 전체를 통과해야 비트코인에 도달하는 구성이다.

총평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 화폐의 역사를 이렇게 길게 훑고 나서야 비트코인 얘기를 시작하는 구성이 처음엔 더디게 느껴졌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왜 이런 순서가 필요했는지 납득이 된다. 시간선호라는 개념 하나만 제대로 흡수해도, 화폐와 저축, 그리고 소비 습관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는 책이다.

더 피아트 스탠다드》가 법정화폐를 비판하는 데 집중한 책이었다면, 이 책은 그 비판의 근거를 화폐사 전체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원전에 가깝다. 두 책을 같이 읽으면 저자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서, 둘 중 하나만 읽었다면 나머지 한 권도 함께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후기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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