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에서 화폐사를, 《더 피아트 스탠다드》에서 법정화폐 비판을 다뤘던 사이페딘 아모스가 이번엔 한 발 더 물러섰다. 화폐도 비트코인도 아닌, 경제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의 기초로 돌아간 거다. 가치, 시간, 노동, 거래라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부터 다시 쌓아 올린 그의 경제학 원론이다. 두 전작이 비트코인이라는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사고의 토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여준다.
어떤 사람이고, 어떤 책이냐
저자 사이페딘 아모스는 레바논아메리칸대학 경제학 교수를 지냈고 컬럼비아대학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국 레바논과 베네수엘라가 초인플레이션으로 무너지는 걸 목격하며 법정화폐의 모순에 천착하게 됐다는 배경은 전작들에서 이미 다룬 그대로다. 2018년 출간한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원제 The Bitcoin Standard)는 39개국에 출간되며 비트코인 관련 도서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됐고, 2021년 《더 피아트 스탠다드》(원제 The Fiat Standard)로 화폐 비판을 한 단계 더 심화시켰다.
2025년 8월 출간된 이 책은 원제 《Principles of Economics》, 즉 경제학 원리라는 제목 그대로 오스트리아학파 전통에 입각해 경제학의 기초 원리와 경제적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52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1부 ‘기초’에서는 인간 행동, 가치, 시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부터 시작해, 2부 ‘경제’에서는 노동, 소유, 거래, 화폐로 사고를 단계적으로 확장해나간다.
경제학은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책의 출발점이 흥미롭다. 아모스는 경제학을 단순한 수요-공급 곡선이나 통계 모델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선택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한다. 이건 오스트리아학파의 핵심 방법론인데, 경제 현상을 집단적 통계나 수학적 예측 모델로 환원하지 않고, 개별 인간의 주관적 행동과 선택에서 출발한다는 거다.
이 관점이 신선했던 건, 정량적 분석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분명히 한다는 점이었다. 책은 정량적 분석과 대조적인 접근방식을 나란히 짚으면서, 인간의 행동을 숫자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놓치는 것들을 짚는다. 화폐와 비트코인을 다뤘던 전작들에서 이미 봤던,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이 책에서는 학문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에서부터 다시 펼쳐지는 셈이다.
한계효용과 물-다이아몬드 역설
책의 2장 ‘가치’에서 다루는 한계효용 이론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모스는 가치가 객관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한 사람이 추가로 얻는 한 단위가 주는 효용에 따라 주관적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그 유명한 ‘물-다이아몬드 역설’, 즉 생존에 필수적인 물은 싸고 사치품인 다이아몬드는 비싼 이유를 이 한계효용 개념으로 풀어내는 대목이 고전적이면서도 명쾌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화폐의 가치도 결국 같은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소성이 낮아질수록 한계효용이 떨어지고, 그만큼 가치도 떨어진다는 논리는 결국 전작들에서 다뤘던 ‘공급량이 무한정 늘어나는 법정화폐가 왜 가치를 잃는가’라는 질문과 정확히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였다.
시간선호 — 다시 만난 핵심 개념
3장 ‘시간’에서 다시 등장하는 시간선호 개념은, 《더 피아트 스탠다드》를 읽었던 독자라면 매우 익숙하게 느껴질 거다. 아모스는 인간에게 가장 궁극적인 자원이 시간이라고 짚으면서, 현재의 만족을 늦추고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있는 능력, 즉 낮은 시간선호가 문명 발전의 핵심 동력이라고 본다.
다만 이번 책에서는 이 개념을 화폐 비판으로 곧장 연결하기보다, 좀 더 근본적인 경제학 원리로 차분히 짚어낸다는 차이가 있었다. 기회비용, 사이먼의 내기 같은 개념들과 함께 엮어내면서, 시간선호가 화폐 시스템뿐 아니라 노동, 자본 축적, 모든 경제적 선택의 기저에 깔려 있는 보편 원리라는 걸 보여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통찰
책에서 가장 오래 곱씹게 된 메시지는 노동을 다루는 4장에서 나왔다. 아모스는 ‘노동은 착취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마르크스주의적 착취 이론을 오스트리아학파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노동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된 노동시간이 아니라, 거래 당사자들의 주관적 효용 판단으로 설명하는 이 대목이, 책 전체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사고를 자극하는 부분이었다.
비판적으로 봐야 할 지점들
다만 이 책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학파라는 명확한 입장에서 쓰인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주류 경제학(특히 케인즈주의나 신고전파)의 정량적 분석과 정부 개입을 비판하는 기조가 책 전반에 깔려 있어서, 균형 잡힌 경제학 입문서를 기대한다면 다소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일 수 있다. ‘경제학 원론’이라는 제목이 주는 보편성과 달리, 실제로는 오스트리아학파라는 특정 학파의 원론에 가깝다는 점은 분명히 인지하고 읽어야 한다.
또한 52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인간 행동부터 화폐까지 체계적으로 쌓아 올리는 구성이라, 가볍게 훑어볼 책은 아니다. 전작들에서 비트코인이라는 결론에 이미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의 전반부(가치, 시간, 노동)는 다소 우회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누구한테 추천하나
-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나 《더 피아트 스탠다드》를 읽고 아모스의 사상적 기초가 궁금했던 사람한테 추천한다. 그의 화폐 비판이 어떤 경제학적 토대 위에 서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주류 경제학의 정량적 접근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 사람한테도, 오스트리아학파라는 대안적 시각을 체계적으로 접할 좋은 기회가 될 거다.
- 다만 균형 잡힌 경제학 입문서를 원한다면, 이 책 하나로 경제학 전체를 이해했다고 단정하지 말고 다른 학파의 입문서도 함께 찾아보길 권한다.
총평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 화폐와 비트코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아모스가 어떤 경제학적 사고를 거쳐왔는지를 처음부터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작들의 빈 퍼즐을 채워주는 책이었다. 한계효용, 시간선호, 노동가치 같은 개념들을 오스트리아학파 특유의 관점에서 차분히 쌓아 올리는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와 《더 피아트 스탠다드》가 화폐라는 구체적 결론으로 독자를 이끌었다면, 이 책은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사고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세 권을 함께 읽으면, 아모스라는 한 경제학자의 사상이 가장 기초적인 인간 행동에서 출발해 어떻게 비트코인이라는 결론까지 이어지는지, 그 전체 궤적을 입체적으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후기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