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낙관론》 리뷰 — 화폐가 되어가는 과정을 4단계로 본다면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를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 화폐의 역사를 워낙 길게 훑다 보니, 정작 비트코인이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전망은 상대적으로 짧게 다뤄졌다는 거다. 이 책은 그 갈증을 정확히 채워준다. 원제 《The Bullish Case for Bitcoin》, 국내에는 《비트코인 낙관론》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은 비트코인이 화폐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명확한 단계로 쪼개서 보여준다. 마이클 세일러가 직접 추천사를 썼다는 점도, 이 책이 비트코인 진영에서 얼마나 영향력 있는 텍스트인지 짐작하게 한다.

어떤 사람이고, 어떤 책이냐

저자 비제이 보야파티는 경제학자나 금융 전문가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이다. 구글 등에서 일한 이력이 있고, 비트코인을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으로 분석해온 인물로 꼽힌다. 이 책의 원형이 된 에세이는 2017년에 처음 발표됐는데, 그 시점에 쓴 전망들이 이후 몇 년간 실제로 맞아떨어지면서 “타임머신을 탄 듯한 통찰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분량 면에서는 앞서 다룬 사이페딘 아모스의 책들보다 훨씬 가볍다. 화폐사 전체를 통과하기보다, 비트코인이라는 자산 하나에 집중해서 빠르게 핵심을 짚는 구성이다. 그래서 비트코인 입문서로도, 이미 어느 정도 개념을 아는 독자를 위한 정리서로도 무난하게 읽힌다는 평가가 많다.

화폐화의 4단계 — 이 책의 핵심 프레임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실용적인 개념이 ‘화폐화의 4단계’다. 저자는 어떤 자산이 화폐로 자리 잡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수집품 단계, 일부 사람들이 희소성이나 독특함 때문에 모으기 시작하는 단계다. 둘째는 가치 저장 수단 단계, 더 많은 사람들이 부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단계다. 셋째는 교환의 매개 수단 단계, 실제 거래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계다. 넷째는 회계 단위 단계, 모든 가격이 그 화폐 기준으로 매겨지는 최종 단계다.

이 프레임이 유용한 이유는, 비트코인의 현재 위치를 가늠할 구체적인 잣대를 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비트코인이 첫 번째 단계인 수집품에서 두 번째 단계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넘어가는 중이라고 진단한다. 막연히 “비트코인이 오를까 내릴까”를 묻는 대신, “지금 어느 단계에 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게 만드는 프레임이라, 투자 판단의 해상도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가격이 아니라 시가총액과 유동성을 보라

책에서 실용적으로 가장 도움이 됐던 조언이 이거다. 저자는 비트코인 한 개의 가격이 몇 달러인지에 매몰되지 말고, 전체 시가총액과 유동성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별 코인 가격은 단지 전체 시가총액을 발행량으로 나눈 숫자일 뿐, 그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거다.

이 관점이 흥미로웠던 건, 비트코인의 강력함을 가격이 아니라 네트워크 효과와 유동성의 깊이로 설명한다는 점이었다. 다른 자산들과 비교했을 때 비트코인의 시가총액과 거래 유동성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신뢰를 뒷받침하는 근거라는 거다. “1비트코인에 얼마”라는 질문에만 매몰돼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질문 자체를 바꾸게 될 거다.

흔한 오해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다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비트코인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품는 의문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변동성이 너무 커서 화폐로 못 쓰인다는 비판, 채굴에 전기를 너무 많이 쓴다는 비판, 이미 너무 비싸졌다는 의문, 실체 없는 자산이 왜 가치가 있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차례로 짚는다.

특히 전기 소비 비판에 대한 반박이 인상적이었다. 비트코인 채굴의 에너지 사용을 단순히 낭비로 볼 게 아니라, 그 에너지가 네트워크의 보안과 신뢰를 떠받치는 데 쓰인다는 시각이다. 이 블로그에서 다뤘던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등장했는데, 두 책 모두 채굴 비용을 화폐의 보안 비용으로 재해석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책에서 가장 오래 남았던 대목은 비트코인의 화폐화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고 단언하는 부분이었다. 전 세계 거래소가 일제히 폐쇄되어야만 이 흐름을 완전히 멈출 수 있는데, 인터넷을 완벽히 차단할 수 없는 것처럼 비트코인은 이미 너무 널리 퍼졌다는 거다. 정부 한두 곳의 규제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네트워크가 분산돼 있다는 이 진단이, 비트코인의 본질을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한 문장으로 느껴졌다.

비판적으로 봐야 할 지점들

다만 이 책 역시 균형 잡힌 분석서라기보다는 제목 그대로 ‘낙관론’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읽어야 한다. 저자는 비트코인이 결국 세계 준비통화의 자리까지 갈 가능성을 전제로 논의를 전개하는데, 이건 검증된 미래가 아니라 하나의 시나리오다. 변동성, 규제 리스크, 경쟁 암호화폐의 부상 같은 반대 논거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뤄지는 편이다.

또한 2017년에 쓰인 원전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그 이후 등장한 비트코인 ETF 승인이나 각국 정부의 전략자산화 움직임 같은 최신 흐름은 책의 핵심 논리 자체에는 반영돼 있지 않다. 화폐화 4단계라는 틀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구체적인 현재 상황 판단은 별도로 최신 정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누구한테 추천하나

  • 비트코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한테 입문서로 추천한다. 화폐사 전체를 훑는 책들보다 훨씬 가볍고 빠르게 핵심 논리를 잡을 수 있다.
  • “비트코인이 왜 가치가 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에 명쾌한 답을 듣고 싶은 사람한테도 적합하다.
  • 다만 균형 잡힌 양쪽 시각을 원한다면, 이 책 하나로 끝내기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의 자료도 함께 찾아보길 권한다. 제목처럼 이 책은 철저히 낙관론 쪽 변론이다.

총평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 화폐화의 4단계라는 프레임 하나만 제대로 흡수해도, 비트코인을 가격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과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짧고 명료하게 핵심을 짚는다는 점에서, 두꺼운 화폐사 책들을 읽기 전 워밍업으로도, 이미 읽은 뒤 정리용으로도 잘 맞는 책이다.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가 화폐의 역사 전체를 통해 비트코인에 도달했다면, 이 책은 비트코인이라는 결과물 자체에 집중해서 그 미래 궤적을 그려본다. 두 책을 같이 읽으면 과거와 미래, 양쪽에서 비트코인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후기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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